신학

다윗의 집안의 비극(삼하13:20-29)

skd1 2025. 5. 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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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아 터진 상처: 다윗 집안을 뒤덮은 비극의 그림자 (사무엘하 13:20-29)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할 때

암논의 끔찍한 죄악 이후, 다윗의 집안에는 불편한 침묵과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다말, 죄책감과 비겁함 뒤에 숨은 암논, 그리고 동생의 비극을 목격한 압살롬. 이들의 상처와 분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무엘하 13장 20절부터 29절은 곪아가는 상처를 제때 치유하지 못했을 때, 그 고름이 결국 터져 나와 더 큰 비극을 낳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아버지 다윗의 역할과 압살롬의 마음에 쌓여간 분노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지 주목하게 됩니다. 외면한다고 문제가 사라질까요? 묻어둔 갈등은 언젠가 더 큰 폭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윗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안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알고도 눈 감은 아버지, 불씨는 커져만 가고...

다말의 오라버니 압살롬은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온 다말을 맞이하며 사건의 전말을 직감합니다 (삼하 13:20). 그리고 이 모든 소식은 아버지 다윗 왕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성경은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삼하 13:21) 라고 기록합니다. 그는 분명 분노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딸에게 저지른 패륜적인 죄악에 대해 아버지로서, 왕으로서 당연히 분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거기서 멈추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다윗이 암논을 처벌했다거나, 다말을 위해 정의를 세우려 했다거나, 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왜 다윗은 분노만 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요? 혹시 맏아들 암논을 향한 편애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과거(밧세바 사건) 때문에 아들의 죄를 엄격하게 다스릴 명분을 잃었다고 생각했을까요? 혹은 또 다른 자식 간의 갈등을 우려하여 문제를 덮으려 했을까요? 이유가 무엇이든, 다윗의 '간과'와 '침묵'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깊은 골을 만들었습니다.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곳에서 피해자의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며, 잠재된 분노는 다른 방식으로 폭발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리더로서, 아버지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다윗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말없이 품은 칼날, 형제의 마음은 멀어져만 가고

아버지 다윗이 침묵하는 동안, 압살롬의 마음속에는 암논을 향한 증오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삼하 13:22) 라고 증언합니다. 압살롬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습니다. 암논에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침묵 속에는 활화산처럼 들끓는 분노와 복수심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 침묵은 무려 2년 동안 이어집니다 (삼하 13:23).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두 형제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암논은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여전히 왕자로서의 삶을 누렸을 것이고, 압살롬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칼을 갈고 있었을 것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갈등과 표현되지 못한 분노는 이처럼 관계를 좀먹고 파괴적인 결과를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차라리 터뜨리고 싸우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곪아가는 상처를 덮어둔 채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덫을 놓는 압살롬, 축제는 복수의 무대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압살롬은 드디어 복수를 실행에 옮길 기회를 잡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근처 바알하솔에서 양털 깎는 날을 맞아 큰 잔치를 계획합니다 (삼하 13:23). 양털 깎는 날은 큰 축제의 날이었고, 사람들의 경계심이 풀어지기 쉬운 때였습니다. 압살롬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아버지 다윗 왕과 모든 왕자를 잔치에 초대합니다 (삼하 13:24). 다윗은 왕궁을 비울 수 없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하지만, 압살롬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삼하 13:25). 그는 집요하게 "그러면 청하건대 내 형 암논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 라고 간청합니다 (삼하 13:26). 다윗은 처음에는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삼하 13:26) 며 꺼림칙해 하지만, 압살롬의 계속되는 간청에 결국 암논을 포함한 모든 왕자를 잔치에 보내는 것을 허락하고 맙니다 (삼하 13:27). 압살롬의 치밀함과 인내심, 그리고 다윗의 (어쩌면 무뎌진) 경계심이 맞물려 비극의 무대가 완성되고 있었습니다. 축제의 흥겨움 뒤에는 서슬 퍼런 복수의 칼날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피로 물든 축제, 터져버린 비극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암논이 술에 취해 마음이 즐거워질 때쯤, 압살롬은 미리 준비해둔 종들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삼하 13:28). 압살롬의 명령이 떨어지자, 종들은 일제히 암논에게 달려들어 그를 쳐 죽입니다.

순식간에 축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형제의 끔찍한 죽음을 목격한 다른 왕자들은 경악하여 각자 노새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도망칩니다 (삼하 13:29). 압살롬의 2년간 품어온 복수가 마침내 실행된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 복수는 결코 정의의 실현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폭력과 살인일 뿐이었습니다. 다윗의 간과와 침묵, 압살롬의 묻어둔 분노와 치밀한 복수가 결국 형제 살해라는 끔찍한 비극을 낳고 만 것입니다.

무엇을 남겼는가? 깨진 가정, 깊은 상처

다윗 집안의 이야기는 해결되지 않은 죄와 갈등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 리더십의 부재와 책임: 다윗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침묵과 방관은 결국 더 큰 비극을 막지 못했습니다. 가정과 공동체의 리더는 문제 앞에서 침묵하거나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정의를 세우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 침묵 속에 자라는 독초, 분노: 압살롬처럼 분노와 미움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아닙니다. 곪아가는 상처는 언젠가 반드시 터지기 마련이며, 종종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됩니다. 건강하게 분노를 표현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 복수의 허망함: 압살롬의 복수는 잠시 시원함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을 살인자로 만들고 도망자 신세가 되게 했습니다. 복수는 또 다른 죄와 비극을 낳을 뿐,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용서와 화해,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에 맡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12:19)
  • 죄의 악순환: 다윗의 죄가 암논의 죄로, 암논의 죄가 압살롬의 죄로 이어지는 모습은 죄의 전염성과 파괴력을 보여줍니다. 죄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단호한 결단과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합니다.

다윗 집안의 비극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 우리의 공동체,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비슷한 갈등과 상처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혹시 외면하고 있는 문제는 없나요? 마음속에 묻어둔 분노는 없나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더 늦기 전에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길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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