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의 한계(왕하10:25-31)

예후의 한계: 순종했지만 변하지 못한 마음
성경을 읽다 보면 완벽해 보이는 인물들도 결국 한계를 드러내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수행했지만, 마음만큼은 온전히 변화되지 못한 예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번제 드리기를 마치매 예후가 호위병과 장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장관들이 칼날로 그들을 죽이고 시체를 밖으로 던지고 바알의 신전 성소까지 들어가서 바알의 신전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주상을 헐며 바알의 신전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이와 같이 예후가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그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아합 집에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까지 이르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 하나님의 명령을 끝까지 완수한 용기
예후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정말 철저하게 수행했습니다. 바알 숭배를 뿌리뽑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당시 바알 신앙은 이스라엘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상태였습니다. 왕실부터 시작해서 귀족들, 그리고 많은 백성들이 바알을 섬기고 있었죠.
하지만 예후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알의 모든 제사장들과 숭배자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단번에 제거했습니다. 바알의 신전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 자리를 변소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보다 더 철저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볼 점: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예후처럼 용기 있게 행동하고 있을까요? 세상의 눈치를 보며 타협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 타협 없는 철저함의 모범
예후의 행동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철저함입니다. 반쪽짜리 개혁이 아니었습니다. "바알을 멸하되 조금만 남겨두자"거나 "나중에 천천히 없애자"는 식의 미적거림이 없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들을 속여서 한 곳에 모아놓은 것도, 신전을 완전히 파괴한 것도, 심지어 그 자리를 변소로 만든 것까지도 모두 철저함의 표현이었습니다. 바알 숭배가 다시는 그곳에서 일어날 수 없도록 완전히 차단해버린 것이죠.
하나님도 이런 예후의 철저함을 인정하셨습니다.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아합 집에 행하였다"고 말씀하시며, 그의 후손이 4대까지 왕위를 이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 변하지 못한 마음의 아쉬움
하지만 성경은 예후의 한계를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 구절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은 작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그렇게 철저히 수행한 예후가, 정작 자신의 마음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그대로 둔 것은 단순히 우상 하나를 더 남겨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예후가 여전히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였습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가면 자신의 왕권이 흔들릴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죠.
깊이 생각해보기: 예후는 하나님의 일은 열심히 했지만, 자신의 이익이 걸린 부분에서는 타협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모습이 있지 않을까요?
🔍 우리 안의 예후를 발견하기
예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이렇게 강렬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 안에도 예후와 같은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봉사하면서도, 가정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 앞장서서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손해를 볼 상황이 되면 작은 부정직함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 진정한 변화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후의 한계는 그의 행동이 아니라 마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철저히 수행했지만, 그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향하지는 못했습니다.
성경이 "전심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순종이라도,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향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
예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철저해야 합니다. 반쪽짜리 순종, 조건부 순종이 아니라 완전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예후가 바알 숭배를 뿌리뽑을 때 보여준 그 철저함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둘째,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순종이라도,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향하지 않으면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자기 점검: 나는 지금 예후처럼 하나님의 일은 열심히 하면서도,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은 여전히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 은혜로 변화되는 마음
다행히 우리에게는 예후보다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행동의 변화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주십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마음의 변화를 하나님의 은혜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또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속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 마무리하며
예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완전한 순종의 중요성과 동시에 마음 변화의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우리 마음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후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되, 동시에 우리 마음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행동과 마음이 일치하는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향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후의 한계를 넘어서는 전심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