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요아스의 잘못(왕하12:17-21)

skd1 2025. 6. 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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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스의 잘못: 하나님을 배반한 왕의 최후

요아스의 잘못: 하나님을 배반한 왕의 최후

왕하 12:17-21을 통해 본 신앙의 교훈

🔥 들어가며: 40년 통치의 마지막 순간들

7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요아스는 40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나뉩니다. 전반부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한 선한 왕의 모습이었고, 후반부는 배반과 우상숭배로 얼룩진 타락한 군주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열왕기하 12장 17-21절은 바로 그 마지막 순간들을 담고 있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만, 여호야다가 죽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아람 왕 하사엘의 침입, 수치스러운 조공 바치기, 그리고 마침내 신하들의 배반으로 인한 죽음까지.

한 사람의 신앙이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요아스의 이야기를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게 됩니다.


📖 본론 1: 하나님을 배반한 요아스의 길

💔 신앙의 멘토를 잃고 방황하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요아스 인생의 전부를 요약합니다. 그의 신앙은 온전히 여호야다라는 한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야다는 단순한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하시야의 후계자 싸움에서 어린 요아스를 보호하고, 아달랴의 찬탈로부터 다윗 왕조를 지켜낸 영웅이었습니다. 또한 요아스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신앙의 스승이었으며, 정치적 조언자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첫 번째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아스의 신앙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지팡이에 기대어 서 있는 사람처럼, 그 지팡이가 사라지면 바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구조였던 것입니다.

🌪️ 아첨꾼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다

여호야다가 죽자 유다의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아첨하며 절하니 왕이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방백들이 "와서" "아첨하며" "절했다"는 표현에서 우리는 그들의 계산된 접근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때는 감히 나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권위적인 존재가 사라지자마자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그들은 요아스의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욕망들을 교묘하게 자극했을 것입니다. "왕이시여, 이제 진정한 자유를 누리십시오." "지금까지 너무 엄격한 규칙에 묶여 사셨습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도 다양한 신들을 섬기면 더 큰 번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요아스가 이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는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히 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따르기로 결정했다는 뜻입니다. 40년간 왕으로 살면서도,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영향에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 아세라 목상과 우상들을 섬기다

결국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는 배반 행위였고, 여호야다가 평생에 걸쳐 이루어낸 종교 개혁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모든 일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요아스는 점진적으로, 단계별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타협으로 시작했을 것입니다.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다른 신들도 조금은 섬겨야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하지만 죄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시작됩니다. 작은 타협이 큰 배반으로 이어지고, 한 순간의 유혹이 평생의 후회로 바뀝니다. 요아스의 삶이 정확히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 본론 2: 하나님을 멸시한 요아스

💀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다

하나님은 요아스를 그냥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심판하시기 전에 반드시 경고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선지자들은 분명하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했을 것입니다. "왕이여, 여호와를 떠나지 마십시오."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이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이 모든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단순히 무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대적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습니다.

🗡️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이다

요아스의 배반은 여기서 절정에 달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에게 임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게 하셨을 때, 스가랴는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계명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대하 24:20).

이는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아스와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왕의 명령으로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것도 여호와의 전 뜰에서 말입니다.

이 사건의 심각성을 이해하려면 스가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는 바로 여호야다의 아들이었습니다. 요아스에게 있어서 여호야다는 생명의 은인이자 신앙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은인의 아들을 죽였다는 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극악무도한 배은망덕의 행위였습니다.

더욱이 스가랴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이를 보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대하 24:22). 이는 복수를 위한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 하나님의 보호를 잃어버리다

스가랴를 죽인 직후부터 요아스의 운명은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그에게서 떠났고, 그가 그토록 의지했던 인간적인 지혜와 정치적 술수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의 최후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십니다. 요아스는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을 스스로 끝내버렸고, 이제 심판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 본론 3: 하나님을 배반한 자가 가는 길

⚔️ 아람 왕 하사엘의 침입

"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니"(왕하 12:17). 이 한 문장에는 요아스의 모든 실패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하사엘은 이미 이전부터 이스라엘과 유다를 괴롭히던 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그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사엘의 침입은 범죄한 요아스 왕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유다군의 전력입니다. 역대하 24장에 따르면, 아람군은 적은 무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큰 군대를 이겼습니다. 이는 군사적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는 군대는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 수치스러운 조공과 성전 기물의 약탈

위기에 직면한 요아스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전쟁을 포기하고 굴욕적인 타협을 선택했습니다. "유다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내매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왕하 12:18).

이 장면은 여러 면에서 충격적입니다. 첫째, 요아스는 조상들이 하나님께 바친 성물들까지 빼앗아 이방 왕에게 바쳤습니다. 이는 단순한 조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행위였습니다.

둘째, 그는 자신이 전반생에 그토록 열심히 수리했던 성전의 기물들을 스스로 내어주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성전 수리를 위해 온 힘을 다했는데, 이제는 그 성전을 약탈당하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셋째, 이 모든 것이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하사엘은 당장은 물러갔지만, 유다의 약점을 완전히 파악했습니다. 앞으로 언제든지 다시 침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 신하들의 배반과 최후

요아스의 인생은 배반으로 시작해서 배반으로 끝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배반했듯이, 이제는 그의 신하들이 그를 배반했습니다. "요아스의 신하들이 일어나서 반역하여 실라에 올라가는 길 베드밀로의 집에서 그를 죽였으니"(왕하 12:20).

이 반역의 배경에는 깊은 원인들이 있었습니다. 역대기에 보면, 그가 예언자인 스가랴를 죽인 죄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하들조차 요아스의 행위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요아스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그들의 목적이 왕조 전복이 아니라 요아스 개인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아스는 침상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질병으로 자연스럽게 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자신의 침실에서, 가장 믿어야 할 신하들의 손에 의해 죽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배반한 자의 최후였습니다.

🪦 왕들의 묘실에서도 거부당하다

요아스의 수치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대하 24:25). 이는 그가 왕으로서의 존경과 명예마저 완전히 잃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마지막 문장이 주는 교훈은 깊습니다. 인간의 명예와 영광은 얼마나 덧없는 것입니까? 40년간 왕으로 군림했지만, 마지막에는 왕들의 묘실에조차 들어갈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 맺으며: 신앙인들에게 주는 교훈

🔍 요아스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

요아스의 이야기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중에 요아스와 같은 신앙의 연약함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첫째, 의존적 신앙의 위험성입니다. 요아스처럼 다른 사람의 신앙에 기대어 사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목사님이 좋아서, 교회 분위기가 좋아서, 주변 사람들이 믿으니까 따라서 믿는 신앙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개인적이고 확실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둘째, 점진적 타락의 위험성입니다. 요아스는 하루아침에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타협들이 쌓여서 큰 배반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작은 타협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셋째, 아첨과 유혹의 위험성입니다. 요아스를 넘어뜨린 것은 대적의 위협이 아니라 방백들의 아첨이었습니다. 때로는 달콤한 말과 편리한 길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 요아스의 실패를 피하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요아스의 실패를 피할 수 있을까요?

첫째, 개인적인 신앙을 구축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깊이 해야 합니다.

둘째, 지속적인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바울의 경고를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영적으로 잘 나갈 때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요아스는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불편한 말씀일지라도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넷째, 진실한 조언자들을 곁에 두어야 합니다. 아첨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입니다.

🌅 희망의 메시지

요아스의 이야기는 경고의 메시지이지만,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셨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하나님은 여전히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혹시 요아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돌아올 수 있습니다. 혹시 작은 타협들로 인해 신앙이 흔들리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요아스의 실패가 우리의 실패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대신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께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날까지 "잘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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