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총을 베푸는 사람(삼하9:1-8)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삼하 9:1)
🌱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삶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과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은혜는 아주 작은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은혜는 우리 인생의 방향을 바꿀 만큼 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면 그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특히 우리가 어려움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위치에 서게 되면, 과거에 받았던 도움의 손길들을 떠올리기 어려워집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양치기 소년에서 시작하여 골리앗을 물리치고,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살아남아 결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왕좌에 오른 후에도 잊지 않았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친구 요나단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사울의 집에 아직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이 말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이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도움을 주었던 요나단을 기억했고, 그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요나단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다윗은 요나단의 가족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혹시 우리의 인생이 안정되고 풍요로워졌을 때,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이들을 잊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지혜입니다.
💖 변함없는 다윗의 은총
삼하 9장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요나단의 후손을 찾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를 불러 요나단의 가족에 대해 물었고,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아직 살아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를 저나이다" (삼하 9:3)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므비보셋의 상태입니다. 그는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은 종종 소외되고 무시당했습니다. 더구나 그는 이전 왕가의 후손으로, 새 왕에게는 정치적 위협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고려 없이 므비보셋을 찾았습니다. 그가 찾은 이유는 오직 하나,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윗의 은총은 조건적이거나 계산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사랑과 약속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진정한 은총은 상대방의 조건이나 상황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찾아 그를 자신의 식탁에서 왕자 중 하나처럼 대우했습니다. 그는 사울의 모든 땅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었고, 시바와 그의 가족들이 므비보셋을 위해 일하도록 했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모든 땅을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삼하 9:7)
이것은 단순한 물질적 도움을 넘어서는 완전한 복권과 회복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왕의 식탁에서 먹는 특권을 얻었는데, 이는 그가 왕의 가족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은총은 므비보셋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 은총 앞에 선 므비보셋
므비보셋의 반응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다윗 왕 앞에 불려왔을 때, 자신의 처지를 "죽은 개"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가 절하여 이르되 당신의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보시나이까" (삼하 9:8)
므비보셋은 자신이 왕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치 없는 존재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전 왕가의 후손으로서 새 왕에게 처형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므비보셋을 단지 정치적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므비보셋을 요나단의 아들로, 자신이 사랑했던 친구의 연장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에게 므비보셋은 은총을 베풀 대상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의 겸손한 태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서야 할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므비보셋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조건이나 자격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에 근거합니다. 다윗이 요나단과의 약속 때문에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듯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다윗과 므비보셋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다윗처럼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은총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권력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과거의 약속과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다른 이들로부터 받은 도움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 10:8)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앞에 겸손히 서야 합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을 "죽은 개"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지나친 자기 비하가 아니라, 은총 앞에 선 인간의 겸손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총 앞에서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약 4:6)
셋째, 우리는 다윗의 은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총을 예표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모든 영적 복을 주셨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로운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후 1:3)
💭 마음에 새기는 말씀
다윗과 므비보셋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은총의 진정한 의미를 배웁니다. 은총은 단순한 호의나 도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과 약속에 근거한 전인적 돌봄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물질적 도움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은총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러한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이라는 선물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과 같은 은총을 베푸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 봅시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삶,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은총을 베푸는 삶은 어렵고 희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복된 여정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기억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그 은총을 나누는 삶을 살아갑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저희에게 베푸신 크신 은총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자격 없는 존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저희를 자녀 삼아주시고 모든 영적 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처럼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다른 이들에게 은총을 베푸는 삶을 살게 도와주소서. 저희의 마음에 감사와 겸손을 심어주시고, 당신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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