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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아하스가 만든 제단(왕하16:10-20)

by skd1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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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가 만든 제단 -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예배의 위험성

아하스가 만든 제단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예배의 위험성 (열왕기하 16:10-20)
성경을 읽다 보면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왕들의 행동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유다 왕 아하스가 만든 제단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 방식을 버리고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낸 아하스의 선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전해줍니다.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 가서 다메섹에 있는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양과 그 구조의 자세한 도면을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제단을 만들되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만들어 놓았더라" (열왕기하 16:10-11)

🚫 인간의 지혜로 만들어진 위험한 제단

아하스가 다메섹에서 본 제단은 분명 인상적이었을 것입니다. 아람 왕의 화려하고 웅장한 제단을 보며, 그는 "우리도 저런 제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제단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전에서 사용할 제단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재료부터 크기, 만드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이방 민족의 제단을 모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대적 적용: 오늘날에도 우리는 종종 "더 좋아 보이는" 방법들을 찾으려 합니다. 다른 종교나 철학의 방식이 더 효과적이거나 현대적으로 보일 때,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의 지혜를 선택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아하스의 선택은 단순한 건축 양식의 변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하는 교만한 결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 더 좋은"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 타협하는 지도자, 우리야의 선택

이 이야기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제사장 우리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왕의 명령 앞에서 그는 자신의 사명을 포기했습니다.

우리야는 아하스의 도면을 받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왕이시여,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식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명령에 협력했습니다.

편의주의적 신앙의 위험성

우리야의 행동은 많은 현대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할 때, 우리는 종종 "상황이 어쩔 수 없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핑계로 타협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한 번의 타협은 다음 타협을 더 쉽게 만듭니다.

우리야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왕에게 조언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그 책임을 포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지도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입니다.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명령대로 하고" (열왕기하 16:16)

⚖️ 하나님의 제단을 임의로 바꾼 결과

아하스는 새로운 제단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존에 있던 하나님의 놋제단을 함부로 옮겨버렸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정성스럽게 만든 거룩한 제단을 자신의 마음대로 처리한 것입니다.

거룩함에 대한 무감각

하나님의 놋제단은 단순한 종교적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 역할을 하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수많은 제사가 드려지고, 백성들의 기도와 회개가 올려진 거룩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이런 거룩함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그저 낡은 제단일 뿐이었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면 되는 단순한 물건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심각한 무시였습니다.

깊이 생각해볼 점: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요? 주일, 기도의 시간, 말씀 묵상의 자리를 세상의 다른 일들과 쉽게 바꾸어버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자기 중심적 예배의 시작

아하스가 놋제단을 옮긴 후 한 말을 살펴보면 그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큰 제단은 내가 아침에 번제와 저녁에 소제와 왕의 번제와 소제와 온 국민의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드리는 데에 쓰고 또 번제의 피와 다른 제사의 피를 뿌리는 데에 쓰려니와 놋제단은 내가 점치는 데에 쓰리라" (열왕기하 16:15)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점치는 데" 사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거룩한 제단을 미신적인 용도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입니다.

💡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하나님의 방식을 존중하는 믿음

아하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의 방식을 존중하고 있는가?" 때로는 우리 눈에 더 좋아 보이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더 효율적이고, 더 현대적이고,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들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판단보다 높으신 분입니다. 그분의 지혜는 우리의 지혜보다 뛰어나고, 그분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완전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방식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중요성

우리야의 모습에서 우리는 타협의 위험성을 배웁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압력을 가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런 때일수록 더욱 굳건히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타협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룩함에 대한 올바른 이해

아하스가 놋제단을 함부로 다룬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들을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주일을 다른 일로 채우거나, 기도 시간을 소홀히 하거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것들이 모두 이와 같은 실수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하신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거룩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 마무리하며

아하스가 만든 제단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각자의 신앙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시험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앞에도 때로는 더 좋아 보이는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더 쉽고, 더 편하고, 더 인기 있는 방법들이 우리를 유혹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아하스의 선택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최선입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이해되지 않고 어려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타협하지 않는 신앙, 거룩함을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함을 통해 우리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각자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제단을 세워드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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