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 타락, 그 참혹한 결말 - 아하스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들어가며: 한 왕의 선택이 가져온 비극
유다 왕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왕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아하스 왕만큼 충격적이고 참혹한 죄악을 저지른 왕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열왕기하 16장 1-9절에 기록된 아하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왕의 개인적인 실패를 넘어서, 하나님을 떠났을 때 인간이 얼마나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아하스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책임을 저버리고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에 굴복하여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의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하스가 저지른 세 가지 큰 죄악을 통해 하나님을 떠난 삶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이런 길을 피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죄악: 가장 소중한 것을 거짓 신에게 바치다
아버지의 심장을 불태운 선택
아하스가 저지른 첫 번째 죄악은 자신의 아들을 몰렉신에게 바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우상숭배를 넘어선 인신제사, 그것도 자기 혈육을 제물로 바친 극악무도한 행위였습니다.
몰렉신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숭배되던 가나안족의 신으로, 어린 아이들을 불에 태워 제사하는 잔혹한 의식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신은 풍요와 승리를 약속하며 사람들을 유혹했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파괴하고 가정을 무너뜨리는 악한 존재였습니다.
아하스는 왜 이런 끔찍한 선택을 했을까요? 당시 유다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에게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아하스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대신, 이방 신들의 힘에 의존하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아들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경고
오늘날 우리는 실제로 자녀를 불에 태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대판 몰렉신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성공, 돈, 명예, 권력 등이 현대의 우상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가장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도록 유혹합니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영혼을 돌보는 일보다 세상적 성공을 더 중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가족과의 시간, 양심의 평안을 버리면서까지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아하스의 첫 번째 죄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하나님보다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두 번째 죄악: 정직함을 버린 지도자의 몰락
거짓과 기만으로 얼룩진 통치
아하스의 두 번째 죄악은 정직함의 부재였습니다. 성경은 아하스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그의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왕하 16:2)라고 기록합니다.
정직함(야샤르)이라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거짓말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도덕적 성실성, 신앙적 진실성, 그리고 백성에 대한 책임감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아하스는 이 모든 면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백성들에게 거짓된 종교를 강요했으며,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 대신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의 통치는 기만과 타협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지도자의 정직성이 갖는 의미
지도자의 정직성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하스의 부정직은 단순히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온 유다 백성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리더인 부모, 교회의 리더인 목회자, 사회의 리더인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정직성은 그들이 이끄는 공동체의 영적, 도덕적 건강을 좌우합니다.
성경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라고 말씀합니다. 정직함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특징이며, 이는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도 필수적입니다.
정직함 회복의 길
아하스와 달리 우리는 어떻게 정직함을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나침반으로 삼을 때 정직한 삶이 가능해집니다.
둘째, 작은 일에서부터 정직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눅 16:10)라는 말씀처럼, 일상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인격을 형성합니다.
셋째, 정직함의 대가를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때로는 정직함 때문에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궁극적으로 의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세 번째 죄악: 형제의 피를 부른 배신
동족을 향한 칼날
아하스의 세 번째 죄악은 동족 이스라엘의 죽음을 자처한 것입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했을 때, 아하스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대신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로 하여금 북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동족의 멸망을 초래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들을 적의 손에 넘겨준 것입니다.
이기심이 부른 비극
아하스의 이런 선택은 극도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의 안녕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왕조의 생존만을 생각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 22:18)라는 축복의 약속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하스의 선택이 단기적인 해결책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앗수르의 도움으로 당장의 위기는 모면했지만, 결국 유다도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훗날 앗수르는 유다마저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
아하스의 세 번째 죄악은 공동체 의식의 부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고전 12:26)라고 말씀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공동체 의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정에서는 한 가족이, 교회에서는 한 몸이, 사회에서는 한 공동체로서 서로를 돌보고 책임져야 합니다.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다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아하스와 같은 죄악입니다.
전환점: 하나님의 경고와 기회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
아하스의 죄악이 절정에 달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습니다. "너는 조용하여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사 7:4)는 메시지와 함께, 하나님께서 친히 표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임마누엘" 예언으로 이어졌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위로와 약속의 메시지였습니다.
거절된 은혜
하지만 아하스는 이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나는 시험하지도 아니하고 여호와를 괴롭게도 아니하겠나이다"(사 7:12)라고 말하며 겉으로는 경건한 척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악의 길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수많은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만 그 기회들을 계속 거절한다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결말: 죄악의 대가와 우리가 얻는 교훈
아하스의 비참한 최후
아하스의 죄악은 결국 참혹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는 생전에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무거운 조공을 바쳐야 했고, 성전을 더럽히고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유다는 영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극도로 타락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의 죄악이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비록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개혁을 단행했지만, 아하스 시대에 심어진 우상숭배의 뿌리는 쉽게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아하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위기의 순간에 누구에게 의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하스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 대신 세상의 힘에 의존했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작은 타협이 큰 죄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하스의 죄악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작은 우상숭배부터 시작해서 결국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극악무도한 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셋째, 지도자의 책임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미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하스의 잘못된 선택은 온 유다 백성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 각자도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희망의 메시지
하지만 아하스의 이야기가 절망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며 유다를 영적으로 회복시켰고,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원받았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비록 우리가 과거에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도,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돌이킨다면 새로운 시작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며,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마무리: 오늘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
아하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삶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분명히 보았습니다. 자녀를 우상에게 바치고, 정직함을 버리고, 동족을 배신하는 그의 죄악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경고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소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이사야 55장 7절의 말씀처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아하스의 길이 아닌 히스기야의 길, 다윗의 길을 선택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정직하게 살며, 공동체를 사랑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너희가 오늘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는 여호수아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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