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일의 결과(삿9:22-29)
안녕하세요, 성경을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사사기 9장 22-29절을 통해 '악한 일의 결과'에 대해 함께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아비멜렉의 이야기를 통해 악한 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우리의 삶에 어떤 교훈을 주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이야기의 배경: 아비멜렉은 누구인가?
아비멜렉은 기드온(여룹바알)의 아들로, 그의 이야기는 사사기 8장 말미부터 9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사사였지만,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기드온이 죽은 후, 아비멜렉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세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이복형제 70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오직 요담이라는 막내 형제만이 숨어서 살아남았습니다. 이러한 살인을 통해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었고, 세겜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요담은 그리심 산 꼭대기에서 세겜 사람들에게 우화를 들려주며 그들과 아비멜렉을 저주했습니다. 이 저주는 결국 현실이 되어갑니다. 사사기 9장 22-29절은 아비멜렉이 세겜을 다스린 지 3년이 지났을 때, 그와 세겜 사람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 악한 길은 그 끝이 험하다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삿 9:22-23)
아비멜렉은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형제들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생각으로 악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3년을 다스린 후에 하나님께서 그와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아비멜렉의 악행이 결국 그에게 돌아오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악한 길의 끝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 잠시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길의 끝에는 반드시 고통과 파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기적인 이득이나 성공을 위해 정직하지 못한 방법, 다른 사람을 해치는 방법을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해를 가져옵니다. 시편 1편 6절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악한 길의 결말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가 선택한 살인과 배신의 길은 결국 그 자신에게 돌아와 파멸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 악인의 마음에는 평강이 없다
"이는 아비멜렉의 그의 형제 칠십 명에게 행한 포학한 일로 그의 형제를 죽인 죄가 그에게 돌아가게 하시며 또 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죄가 그들을 도와 그의 형제를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하심이더라" (삿 9:24)
아비멜렉은 왕이 되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평강이 없었습니다. 그가 저지른 70명의 형제 살해라는 끔찍한 죄는 그의 양심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또한 세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아비멜렉의 악행에 동참했고, 그 결과 그들의 마음에도 평안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 57:21)고 말씀합니다.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의 마음에는 항상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악행이 언젠가 드러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살아갑니다.
사사기 9장 25절을 보면, "세겜 사람들이 산 정상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대적하게 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 대한 배신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길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약탈하면서 아비멜렉에게 간접적으로 도전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에 평강이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양심에 거스르는 일을 할 때, 우리 마음은 평안을 잃게 됩니다. 일시적인 이득이나 쾌락을 위해 악한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선한 길을 걸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 악한 동맹은 깨어진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의 형제들과 함께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의지하더라...가알이 세겜 사람들에게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그는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삿 9:26-28)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처음에 서로의 이익을 위해 동맹을 맺었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게 은 칠십 개를 주었고, 아비멜렉은 그 돈으로 불량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고용하여 자신의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 동맹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세겜 사람들을 아비멜렉에 대항하도록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비멜렉의 출신과 정통성을 문제 삼으며 세겜 사람들에게 "너희는 누구를 섬기려 하느냐?"라고 도전했습니다.
악한 목적으로 맺어진 동맹은 결국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초가 신뢰와 정의가 아닌 이기심과 불의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고,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잘못된 목적이나 가치관으로 맺어진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진정한 우정과 동맹은 정직, 신뢰, 상호 존중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3절은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경고합니다.
🌟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회개와 새로운 시작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납니다. 사사기 9장의 후반부를 보면, 그는 결국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윗짝에 머리가 상하고, 자신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찔려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는 그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히 악인의 멸망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항상 회개와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에스겔서 33장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악한 길을 선택하면 그 결과는 파멸이지만, 우리가 그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새 생명을 주십니다.
📚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수천 년 전의 일이지만, 그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첫째, 선택의 중요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아비멜렉은 권력을 위해 형제들을 죽이는 악한 선택을 했고, 그 결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도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둘째, 진정한 평안의 근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악인의 마음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며, 그분의 뜻대로 살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165절은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관계의 기초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친구 관계, 비즈니스 파트너십, 심지어 결혼 관계까지도 그 기초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기적인 목적이나 일시적인 이득을 위한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상호 존중, 신뢰, 사랑에 기반한 관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에 악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그들의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렀듯이, 모든 불의는 그 대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기에,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 용서와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십니다.
✨ 결론: 선한 길을 선택하자
아비멜렉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악한 길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악한 길은 그 끝이 험하고, 악인의 마음에는 평강이 없으며, 악한 동맹은 결국 깨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한 길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며, 회개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십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아비멜렉처럼 자신의 이익과 권력만을 추구하는 악한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의와 사랑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시편 1편 1-3절의 말씀처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약속됩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한 길을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평안과 축복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비멜렉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경고와 교훈이 되어,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인도하는 나침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더 깊은 영적 통찰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또 다른 성경의 보물을 함께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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