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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어리석은 나발(삼상25:9-17)

by skd1 2025.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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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과 분노 사이, 위기를 막은 목소리 (사무엘상 25:9-17)


❓ 다윗의 정중한 부탁,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까? (기)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쫓기는 와중에도 예를 갖춰 도움을 청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의 젊은이들은 다윗의 정중한 메시지를 가지고 부유한 나발에게 갔습니다 (삼상 25:5-8). 잔칫날의 풍성함 속에서 약간의 식량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그리고 자신들이 나발의 목자들을 보호해주었던 선행에 대한 작은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과연 나발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의 대답은 앞으로 펼쳐질 긴박한 사건의 불씨가 됩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나발의 말을 그대로 다윗에게 전하러 돌아갑니다 (9절). 그들의 발걸음에는 이전의 기대감 대신, 차가운 모욕감과 실망감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나발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무엇이었고, 그것은 왜 다윗을 그토록 격분하게 만들었을까요?


🤷‍♂️ "다윗이 누구길래?" 나발의 매몰찬 거절과 숨겨진 어리석음 (승 - 1: 우매한 나발)

다윗의 젊은이들이 그의 이름으로 문안하며 도움을 청했을 때, 나발의 반응은 싸늘함을 넘어 모욕적이었습니다 (10-11절). 그는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라고 되묻습니다. 이는 단순히 다윗을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시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친 영웅이자 사울 왕의 사위였으며, 이미 상당한 세력을 이끌고 있었기에 나발이 그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 이 질문은 다윗의 신분과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매우 오만한 표현이었습니다. 마치 '근본도 없는 떠돌이가 감히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느냐?'는 식의 비아냥거림이었죠.

더 나아가 나발은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라고 말하며 다윗을 주인에게서 도망친 반역자나 노예 취급을 합니다. 이는 사울 왕에게 쫓기는 다윗의 처지를 조롱하고 그의 명예를 짓밟는 악의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라고 쏘아붙입니다. 이는 극도의 인색함과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주었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것을 지키기에만 급급한 모습입니다. 잔칫날의 나눔이라는 당시 문화적 관습마저 무시하는 몰상식함까지 드러냅니다.

그의 이름 '나발'은 히브리어로 '어리석다', '무감각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지혜롭지 못하고 상황 파악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더 큰 위험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 것입니다. 호의를 베풀 기회를 걷어차고, 강력한 잠재적 적을 스스로 만들어버린 나발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 "칼을 차라!" 다윗의 불같은 분노와 복수의 다짐 (전 - 1: 분노하는 다윗)

나발의 모욕적인 말을 전해 들은 다윗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격렬했습니다 (12-13절).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각기 칼을 차라!"고 명령합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네 아들 다윗"이라 낮추며 정중하게 도움을 구했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입니다. 나발의 말은 단순히 도움을 거절한 것을 넘어, 다윗 자신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명예, 그리고 그들이 베풀었던 선의까지 모조리 짓밟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의 고된 삶, 사울의 추격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리더로서 부하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감이 쌓여있던 다윗에게 나발의 모욕은 그의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400명의 부하를 이끌고 나발에게로 향하며 맹세합니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21-22절 - 이 구절은 조금 뒤에 나오지만, 이 시점의 다윗의 분노와 결심을 보여주기에 함께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는 나발의 온 집안을 멸망시키겠다는 무서운 복수의 다짐이었습니다. 정의로운 분노를 넘어선, 다소 과하고 충동적인 반응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모욕을 당했다 하더라도, 한 집안 전체를 몰살하겠다는 결심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모멸감 속에서 인간적인 분노가 얼마나 위험하게 표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에게 있어 이러한 개인적인 감정에 따른 무력 사용은 그의 리더십에 큰 오점을 남길 수 있는 위기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 "큰일 났어요!" 지혜로운 종의 용기 있는 외침 (전 - 2: 소년들의 중재)

다윗의 분노가 폭발하고 400명의 무장한 군사들이 나발의 집을 향해 진격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기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바로 나발의 집에서 일하던 한 젊은이(종)였습니다 (14절). 그는 다윗의 사람들이 왔다가 모욕을 당하고 돌아간 사실과, 다윗이 얼마나 분노했을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할지를 직감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주인 나발이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17절) 라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나발에게 직접 이야기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지혜롭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달려가 모든 상황을 알립니다.

이 젊은이의 보고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단순히 나발이 모욕적인 말을 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다윗의 사람들이 광야에서 자신들(나발의 목자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구체적으로 증언합니다.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15-16절). 이는 나발의 주장("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거짓이며, 다윗의 요구가 결코 부당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밝혀주는 증언입니다. 그는 다윗의 분노가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나발과 그의 온 집안에 "재난이 결정된"(17절) 위급한 상황임을 아비가일에게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이 이름 없는 젊은이의 행동은 단순한 고자질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진실을 밝히고 더 큰 비극을 막으려는 용기 있고 지혜로운 중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 공동체의 위기를 먼저 생각했고, 가장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아비가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판단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용기 있는 외침이 없었다면, 다윗의 칼날은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위기 속에서 배우는 삶의 교훈 (결)

사무엘상 25장 9절부터 17절까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강렬한 교훈을 남깁니다. 어리석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나발), 그리고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분노에 휩싸이면 얼마나 파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다윗)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나발의 모습에서는 교만과 인색함, 그리고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개인과 공동체에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를 배웁니다. 반면, 다윗의 모습에서는 정당한 분노라 할지라도 그것이 지나쳐 복수심으로 변질될 때의 위험성을 경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긴박한 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빛은 있었습니다. 바로 이름 모를 한 젊은이(종)의 지혜와 용기였습니다.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위기를 막기 위해 행동했습니다. 그의 중재는 단순히 나발의 생명을 구한 것을 넘어, 다윗이 훗날 왕으로서 큰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돕는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나발의 어리석음, 다윗의 분노, 그리고 젊은이의 지혜로운 중재와 같은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말의 무게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진실을 말하고 공동체를 위해 용기를 내는 지혜로운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과연 그녀는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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