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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용서와 징벌(삼상25:32-38)

by skd1 2025.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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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여인이 가져온 찬송, 어리석은 자에게 임한 심판 (사무엘상 25:32-38)


😮‍💨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 안도의 한숨과 감사의 고백 (기)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던 순간,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의 용기 있는 행동과 설득력 있는 말은 마침내 분노의 칼날을 거두게 했습니다. 그녀는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겸손히 용서를 구했고 (삼상 25:23-24), 다윗의 명예와 미래를 생각하는 진심 어린 조언으로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28-31절). 만약 아비가일이 아니었다면, 다윗은 씻을 수 없는 피를 흘릴 뻔했고, 나발의 집안은 끔찍한 참극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이제 칼 대신 예물이 오가고, 험악했던 분위기는 가라앉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극적인 반전 앞에서, 주인공 다윗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었던 어리석은 나발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이제 아비가일의 중재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 즉 용서와 감사,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윗의 진심 어린 찬송 (승 - 1: 다윗의 찬송)

아비가일의 말을 들은 다윗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었습니다 (32절).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는 단순히 아비가일의 지혜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 이 모든 상황의 배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먼저 높입니다. 자신을 찾아와 파국을 막도록 아비가일을 보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인식하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찬송 속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에 대한 인정입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등장을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과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둘째, 자신이 저지를 뻔한 죄악으로부터 구원받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는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 덕분에 무고한 피를 흘리는 끔찍한 죄를 짓지 않게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셋째, 자신의 분노를 잠재우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는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 잘못된 길로 갈 뻔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통해 막아주셨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 찬송은 위기의 순간을 넘긴 안도감을 넘어, 보이지 않는 손길로 자신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의 찬송은 아비가일의 지혜만큼이나 빛나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 "당신 말이 맞소!" 분노를 내려놓은 다윗의 겸손 (승 - 2: 다윗의 겸손)

하나님을 찬송한 다윗은 이어서 아비가일의 지혜와 그녀 자신을 축복합니다 (33절).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복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그는 아비가일의 말이 옳았음을 인정하고,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과 지혜를 높이 평가합니다. 이는 조금 전까지 복수심에 불타 칼을 차고 내려오던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놀라운 겸손의 태도입니다.

더 나아가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는지를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면 밝은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속한 남자는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34절). 그는 자신의 분노가 얼마나 컸으며, 아비가일의 중재가 없었다면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았을지 숨김없이 고백합니다. 이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감정적인 행동을 인정하는 용기 있는 자기 성찰이며, 진정한 겸손의 모습입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나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아비가일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성숙함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아비가일이 가져온 예물을 받고 그녀를 평안히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35절). "다윗이 그의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이는 아비가일의 중재를 완전히 받아들였으며, 그녀의 요청대로 나발에게 복수하려던 계획을 철회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행동입니다. 분노 대신 용서를, 복수 대신 평화를 선택한 다윗의 겸손한 결단은 그를 더 큰 죄악으로부터 지켜주었고, 훗날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 흥청망청 잔치 끝, 충격에 돌이 된 나발 (전: 하나님의 심판 - 과정)

다윗의 분노를 잠재우고 평안히 돌아온 아비가일. 그녀가 집에 도착했을 때, 남편 나발은 왕의 잔치와 같은 큰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36절). 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술에 취해 흥청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지혜롭게도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립니다. 술 취한 상태에서는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신중함은 마지막까지 빛을 발합니다.

다음 날 아침, 나발이 술에서 깨자 아비가일은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해줍니다 (37절). 다윗이 보낸 사람들이 왔던 일, 나발이 그들을 모욕하며 돌려보낸 일, 분노한 다윗이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복수하러 왔던 일, 그리고 자신이 급히 예물을 준비해 가서 다윗을 만나 용서를 구하고 화를 막았던 일까지. 이 모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나발의 반응은 극적이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라고 기록합니다. '낙담하다'는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는 '마음이 죽다', '생기를 잃다'에 가깝습니다. 엄청난 충격과 공포로 인해 그의 심장이 멎는 듯했고, 몸은 생기를 잃고 돌처럼 굳어버렸습니다. 아마도 현대 의학적으로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쇼크나 뇌졸중과 유사한 상태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리석은 교만과 인색함으로 위기를 자초하고도 아무것도 몰랐던 나발은, 뒤늦게 자신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삶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것입니다.


⚡️ 결국 하나님의 손에… 열흘 만에 맞은 최후 (결: 하나님의 심판 - 결과)

몸이 돌처럼 굳어버린 나발은 그 상태로 열흘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열흘 후에, 성경은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38절) 라고 간결하게 기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치셨다'는 표현입니다. 나발의 죽음은 단순히 병이나 충격으로 인한 자연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조언을 받아들여 스스로 복수하는 것을 멈추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악한 자를 심판하셨습니다.

이는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했던 말,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나이다"(26절) 와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29절) 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원수를 갚아주시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나발의 죽음은 그의 어리석음과 완악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모욕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였습니다. 또한, 이는 다윗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개인적인 복수는 하나님의 영역이며,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공의를 세우시고 악을 심판하십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지혜로운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겸손히 자신을 낮춘 다윗은 죄를 피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반면, 어리석은 교만과 인색함으로 가득 찼던 나발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용서와 겸손은 생명과 축복으로 이어졌고, 어리석음과 완악함은 심판과 죽음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당신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 당신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발처럼 어리석은 고집을 부리시겠습니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의 중요한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며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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